소개
[문화재소개]
?공산성 진남루 서측에 위치한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성에 머물렀던 사실을 기록하여 숙종 34년(1708)에 석비를 건립하였다. 이괄의 반란과 인조의 남천(南遷)에 대한 내력을 쓰고 공산성에 머물렀던 7일 동안의 행적, 그리고 왕이 머물렀던 공산성에 대한 내용 등이 적혀 있다.
비신은 방형의 오석이며 너비와 두께는 거의 같은 크기이다. 4면에 걸쳐 각자하였고, 비머리 위에는 보주가 있다. 비문은 우의정 신흠이 찬하고 중추부사 남구만이 서(書)하였으며, 영의정 최석정이 두전하였는데 후에 송시열의 음기(陰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