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효자 정이재 정려는 정이재(鄭以載)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20년(숙종 46)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건립 이후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첫번째 중수는 이교년(李喬年)이 지은 「중수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중수는 1760년(영조 36) 정이재의 아들인 정인언(鄭麟彦)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려가 퇴락하여 아들인 정인언이 재물과 재목을 구하여 중수하였다. 1812년(순조 12)에는 건물이 낡아지자 증손인 정홍검(鄭弘儉)에 의해 다시 중수되었다.
이후 1947년 윤정중(尹正重)이 지은 「중수기」에 의하면, 7세손 정홍조(鄭洪朝)가 중수를 하려다가 성사시키지 못한 것을 손자 정상모(鄭尙謨)가 완수하였다고 한다. 박중현(朴重絃)이 지은 「중수기」에는 정홍조의 아들 정인태(鄭寅台)가 완성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때에 이미 한 차례의 중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효자 정이재정려는 1999년 중수되어 지금에 이른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사면에 홍살을 둘렀다. 정려 중앙에 ‘효자정이재지려숭정기원후재경자정월일명정(孝子鄭以載之閭崇禎紀元後再庚子正月日命旌)’이라는 내용의 명정 현판이 있고, 주위에 4기의 「중수기」가 걸려 있다. 효자 정이재 정려 옆에는 3·1운동 당시 활약한 정이재의 7세손 정홍조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손자 정성모(鄭聖謨)가 건립한 기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