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효자 이구상 효자 정려는 원래 1850년(철종 1)에 명정을 받아 여주이씨 종가(宗家)의 대문에 정문의 형태로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명정을 받은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 후 1867년(고종 4) 재실인 필점재(畢霑齋)를 중건하면서 현판을 현재의 위치에 옮겨 걸었다고 전한다.
현재 이구상 의 명정 현판이 걸려 있는 필점재는 후손들에 의하면 1630년(인조 8) 창건된 것이라고 한다. 임헌회(任憲晦)가 지은 『필전재기(畢霑齋記)』에 의하면, 필점재는 여주이씨의 공주 입향조인 이지화(李志和)의 후손들에 의해 창건된 것이며, 이후 세월이 지나며 퇴락되자 이함중과 이구상 의 아들 이종호가 중건의 뜻을 세웠고, 이종호의 아들 이남구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중건을 하였다고 한다.
마을 입구 홍살문으로부터 시작하여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필점재가 위치해 있다. 여기에 효자 이구상과 이종호의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이구상?지문경술이월일명정효자증통훈대부사헌부감찰이종호지문광서계사명정(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李玖相之門庚戌二月日命旌孝子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李鍾浩之門光緖癸巳命旌)' 이라는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