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효자 오수혁 정려는 오수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782년(정조 6)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이규헌(李圭憲)이 지은 「효자오공정려중건기(孝子吳公旌閭重建記)」에 의하면, 1894년(고종 31) 갑오농민군에 의해 정려가 불타 없어져 오랫동안 재건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4년 6대손 오윤환(吳潤煥)이 정려의 옛 터에 오수혁의 현손인 오시영(吳時泳)과 5대손인 오용근(吳用根)의 양대 효행비를 건립하였고, 10년 후인 1974년에는 정려각을 중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오수혁의 정려비도 함께 세웠다. 현재의 효자 오수혁 정려는 1998년에 보수되었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자연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사면은 홍살로 처리하였다. 정려 정면에는 ‘오문양세효자비(吳門兩世孝子碑)’라는 현판이, 정려 내부에는 1964년 이규헌이 쓴 「정려중건기」가 걸려 있다.
정려 내부 왼쪽에 있는 효자 오수혁의 정려비 앞면에는 1782년에 효자로서 통훈대부동몽교관에 증직된 오수혁의 정려임이 기록되어 있다. 즉 ‘효자증통훈대부동몽교관해주오공수혁지려(孝子贈通訓大夫童蒙敎官海州吳公壽爀之閭)라고 되어 있다.
정려 중앙에는 1954년에 후손들이 세운 ‘오문양세 효자비(吳門兩世孝子碑)’가 있고 오른쪽에는 1974년에 세워진 광산김씨 절행비(光山金氏節行碑)가 있다. 비문은 임헌문(林憲文)이 지었고, 후손인 오윤환이 글씨를 썼다. 정려 앞에는 1998년 7대손 오세걸(吳世杰)이 기록한 연혁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