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계룡면 유평리 마을 중앙에 위치한 윤전 사우 뒤쪽에 있는
파평윤씨 종산에는 조선 중기의 학자 용서 윤원거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윤원거는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공부하였으며,
1633년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다. 1635년에는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묘종사운동을 주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672년 윤원거가 세상을 떠나자 계룡면 유평리에 장사지냈는데,
이때 묘비는 세우지 않았다가 1796년에서야 윤광안이 묘비명을
짓고 조윤형이 글씨를 써 처음으로 묘비를 세웠다.
묘비에는 윤원거가 죽은 지 120여 년이 지나도록 그의 높은
도덕과 절의를 나타내는 기록이 없어 작은 묘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