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계룡면 향지리에는 조선시대 대학자이자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
윤증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이 유적은 당대 최고의 학식과 덕행
으로 여러 차례 조정에 천거되었으나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던
명재 윤증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윤증은 아버지인 윤선거에게 사사받았고, 이후 김집·유계·송준길·
송시열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다.
윤증은 30세 되던 해부터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되어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특히 81세 때인
1709년에는 숙종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윤증을 우의정에 제수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까지 조정에 나오기를 권하였으나,
모두 14차례나 상소를 올려 사양하였다.
윤증의 묘소는 처음부터 현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1765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장하였다.